알고 살아가자/일상의 상식

선거, 다수결의 모순

BK(우정) 2020. 5. 7. 05:03
지난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지역구에서 163석, 비례대표로 17석을 얻어 총 180석을 확보했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모범적 대처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전례 없이 상승한 점을 볼 때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더구나 선거 막판에 여당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가 발동하지 않았다면 더 큰 승리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각 당의 의석수와 득표율을 비교해보면 이 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여당이 지역구에서 163석을 얻어 지역구 전체 의석수의 54%를, 이에 비해 미래통합당은 84석을 얻어 28%를 차지했지만, 이들의 득표율은 각각 49.95%와 41.49%이다. 따라서 여당은 득표율에서 미래통합당보다 8% 정도 앞섰지만, 의석수에서는 무려 26%를 앞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미래통합당은 궤멸 상태에 빠졌다고 하지만, 여당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고, 대다수 국민이 미래통합당에 등을 돌린 것도 아니다. 더구나 21대 총선과 20대 총선 결과를 비교해보면, 미래통합당은 그 전신인 새누리당이 얻었던 38.3%보다 오히려 3%가량 더 많은 득표를 했다. 이렇게 의석수와 득표율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180석이나 확보한 것은, 지역구 선거에서는 1표라도 앞선 정당이 의석을 차지하지만, 1표라도 뒤진 정당은 아무리 많은 득표를 해도 결국 사표가 되고 마는 선거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당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지만, 연일 자만을 경계하고 나섰다. 여당의 전신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실수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지만, 아마도 더 큰 이유는 의석수에 가려진 득표율의 진실 때문일 것이다. 의석수만 보면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확고한 것 같지만, 득표율을 보면 이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일찍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던 존 스튜어트 밀은 비례대표제의 중요성을 절실히 강조하였다. 즉 민주주의란 인민의 자기지배 원칙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는 국민 전체가 참여해야 하고, 또한 국민의 대표는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변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구 선거는 다수만이 자신의 대표를 갖기 때문에 소수의 의사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여 소수도 자신의 수에 비례하여 대표자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선거제도로 치러졌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수는 전체 의석수 300석 중 47석에 불과하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국민도 자신의 수에 비례하여 대표자를 가질 수 있을까? 대의제 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가 국민을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하는 체제를 말한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다수결에 따라서만 진행된다면 소수는 대표를 가질 수 없고 이들의 표는 사표가 된다. 놀랍게도 독일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이 1:1이며, 그만큼 독일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사표를 줄이고 소수에게도 의석을 할애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구 선거에서 만들어진 사표를 비례대표제를 통해 만회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의 대폭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이상, 출처 : 대학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