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몽테뉴... 수상록

BK(우정) 2020. 3. 3. 05:18

"실례인 줄 알면서도, 단지 나만을 위해 살고 있다. 내 목적은 그것뿐이다."

시종일관 침착한 문장으로 가득한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은 오로지 `인간`에 대해 쓰여져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몽테뉴 자기 자신에 대해 쓰여져 있다. `수상록`의 소재는 신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다. 오직 몽테뉴 자신이다. 몽테뉴는 말한다. "남들은 앞을 보려고 하지만 나는 나를 들여다본다." 몽테뉴가 살았던 16세기는 유럽 역사상 손꼽히는 암흑기였다. 종교개혁 후폭풍으로 가톨릭과 신교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고, 신교는 다시 칼뱅파와 루터파로 갈려 싸우고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이 중 하나에 가담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지경에 몰려 있었다. 이때 몽테뉴는 어떤 분파도 선택하지 않고 `자립`을 선언한다.

"신앙심은 증오심, 잔혹함, 야심, 탐욕, 중상모략을 조장할 때 참으로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종교는 악덕을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오히려 악덕을 부추기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통해 자유주의 사상을 접하고, 청년기에는 그리스 철학을 공부한 몽테뉴는 신(神)의 전지전능함에 매몰된 학자가 아니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대표작은 `수상록`이다. 몽테뉴는 죽기 직전까지 20년에 걸쳐 수상록을 퇴고했다. 국내에는 축약본이 주로 팔리고 있지만 원래 수상록은 두꺼운 책 3권 분량이다. 수상록의 원제는 `에세(Les Essais)`다. 여기서 `에세이`라는 말이 파생됐다. `에세`는 실험이나 시도를 뜻하는 단어다. 몽테뉴는 자신의 저술이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실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몽테뉴의 `실험`은 근현대 철학사에 큰 희망을 드리운다.

오죽했으면 허무주의 대변자 니체가 "몽테뉴의 글 덕분에 사는 재미가 커졌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와 함께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했을까.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현실에 대한 촌철살인의 성찰이 가득하다. 몽테뉴는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명제를 던지고 하나씩 빈칸을 채워 나간다. 평소 성경 구절을 좀처럼 인용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서재에 써붙여 놓았던 전도서 구절이 있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내가 장차 들어갈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지혜는 내세가 아닌 현실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몽테뉴는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시종일관 "우리는 가장 잘 모르는 것을 가장 잘 믿는다"며 인간의 무지몽매함을 비판했다.  몽테뉴는 사실에 입각한 엄격한 연구 태도, 다양성에 대한 존중 등을 실천하면서 자기만의 성채를 지었다. 법관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수상록에 법에 대한 유명한 명언도 남겼다.

 
"법이 신뢰를 받는 것은 공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법이 지닌 불가사의한 권위의 근거는 이것밖에 없다.

늘 공허하고 불안정한 판단력을 가진 자들이 새로운 법률을 만든다."


이상, 출처; 매일 경제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20/01/35486/


속설에 지식인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한다. 산속에 들어가서 장자가 되는 부류가 있고, 세상에 나와 싸우는 부류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경계인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몽테뉴는 경계인이었다. 몽테뉴가 살았던 16세기 유럽은 겉으로는 르네상스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매우 비이성적인 암흑기였다. 가톨릭과 신교의 대립, 다시 신교 내부에서 벌어진 루터파와 칼뱅파의 갈등이 사회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어느 쪽이나 `그리스도`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일 뿐이었다. 여기에 페스트와 기근까지 겹쳐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몽테뉴는 프랑스 왕정의 시종무관과 조세심의관을 지내는 등 현실권력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은둔자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도 늘 권력과 법으로부터 거리를 두었고, 가톨릭 교도였으면서도 신교도를 적대적으로 보지 않았다. 무능하고 썩어빠진 보수 권력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뭐든지 갈아엎자는 식의 개혁파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이런 면모 때문에 그를 비겁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필자 생각에 몽테뉴는 경계인이었다. 그는 지나친 주의나 주장이 지닌 허구를 일찌감치 알았던 것이다. 그는 그 파벌에 가담하는 것으로 자기를 증명하지 않고 집필을 통해 증명했다.


몽테뉴가 스스로에게 던진 유명한 명제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였다. 그는 개인과 사회, 종교와 과학, 교육과 형벌, 남녀평등, 자연과 문명, 권력과 평등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사색 여행을 시작한다. 몽테뉴는 사색을 하면서 틈틈이 그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낸다. `수상록`이다.

"그대가 비굴하고 잔인한지, 성실하고 경건한지를 아는 자는 그대 자신밖에 없다.

 남들은 그대의 기교를 볼 뿐 그대의 본성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의 판단에 얽매이지 말라.

그대의 양심과 판단을 존중하라."

1570년 몽테뉴가 보르도 고등법원 참사를 그만둔 직후부터 1592년 죽을 때까지 수많은 첨삭을 거쳐 탄생시킨 3권짜리 `수상록`은 `에세이`라는 글쓰기 장르의 원조가 됐다. 몽테뉴가 책을 출간하면서 붙인 제목이 `에세(Les Essais)`였다. `에세`는 프랑스어로 시험이나 시도, 경험을 의미했는데 몽테뉴가 이 제목을 붙인 이유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사색의 결과물을 담았다는 집필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이 언젠가부터 `수필`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문학작품과 실용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글을 의미하는 뜻으로 확장된 것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신화와 역사,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명제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수상록`에는 주옥 같은 경구들이 무척 많다.

"어리석은 자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자기 주장을 고수하고 흥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모르는 것을 가장 잘 믿는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 버리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나다워질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인생은 선도 악도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선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악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몽테뉴 `수상록`은 현대 프랑스, 더 나아가 서구 사회철학의 근간이 됐다. 그의 글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 다양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으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만년에 앙리 4세로부터 관직에 나오라는 거듭된 요청을 받았지만 "관직은 제 몸 하나 가릴 수 없는 참 가련한 신세"라며 끝내 고사했고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이상, 출처;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2/03/13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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