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니체

BK(우정) 2020. 3. 2. 18:21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 출생-사망 /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

▶ 국적 / 독일

▶ 활동분야 / 시, 철학

▶ 주요저서 / 『반시대적 고찰』(1873~1876),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1883∼1885)


독일의 시인 및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을 계승했으며 실존주의 선구자, 파시즘의 사상적 선구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헌책방에서 만난 쇼펜하우어의 책 니체는 어린 시절 『성경』 구절을 완벽히 외우거나 작곡을 하는 등 총명함을 보였지만 대학생 때 술과 담배, 여자에 빠져 결국 본(Bonn)대학의 신학과를 그만두게 되는 어리석음을 보이기도 한다. 이후 니체는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니면서 리츨 교수를 따라 문헌학자의 꿈을 키운다. 그러던 중 니체는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이 책을 산 니체는 꼬박 2주 동안 책을 읽어나갔고 철학에 깊게 매료된다. 이후 그는 대학에서 그리스의 고전 문화에 몰두하였고 음악가 바그너와 친분을 쌓게 된다.


도덕에 반대하는 투쟁을 펼치다 니체는 도덕이 철학자들에게 지금보다 나은 세계가 있음을 믿게 할 뿐 아니라 삶을 죽인다고 생각해 반대하였다. 그는 유토피아 같은 곳은 없으며 이 세계는 비도덕적이어서, 도덕이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도덕은 열등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왜곡된 삶이라고만 여긴 니체는 비천한 자들의 노예도덕(강자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에 편승하며, 동정과 박애 등을 덕으로 삼고 모든 것을 평등화/수평화하려는 도덕)를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강한 군주도덕(권력에 대한 의지에 성실하고, 좀 더 고귀한 것을 열망하는 강자의 도덕)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는 초인을 소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피상적인 것을 좇는 대신에 권력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삶을 주장하며 가치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니체의 할아버지가 루터 교회의 감독관, 아버지가 목사, 어머니가 목사의 딸이었던 탓에 위와 같은 말이 집안에 대한 반항인 것은 아닌가 하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단순한 종교적 의미에서 벗어나 서구의 지성사를 통찰함과 동시에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뜻이라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


투병 중에 탄생한 대표 작품들 니체는 스물네 살 때 바젤 대학의 고전어와 고전문학 촉탁교수로 위촉된다. 이곳에서 십 년 간 교직생활을 하던 니체는 건강상의 이유로 1879년 자리에서 물러난다. 긴 투병 생활에 들어간 니체는 이 시기에 다양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한다. 도덕에 객관적인 기초가 있다는 생각을 비판한 『아침놀』(1880), 처음으로 신의 죽음을 선언한 『즐거운 학문』(1882), 초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 등이 이때 탄생한 작품이다. 그리고 니체는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이 사람을 보라』를 마지막으로 완성한 뒤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과감했던 니체의 글에 동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오로지 니체만이 벌여온 고독한 투쟁은 결국 그의 몸뿐 아니라 정신마저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말년에 쓴 책들은 점점 안 좋아지는 자신의 몸을 이겨내려는 몸부림 속에서 이뤄졌다. 낭만주의자이면서 반낭만주의자이고,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반기독교인이었던 그. 이 때문에 그의 사상은 20세기 파시즘과 나치즘을 추종하던 사람들의 왜곡과 과장으로 선전에 악용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위대한 시인, 인간의 심리를 천재적 통찰력으로 그려낸 심리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상, 출처; 시선뉴스

http://www.sisu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