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생각들/BK의 원고 기고

강의 - 예술과 디스플레이~ 에 관한 짤막한 전달

BK(우정) 2020. 2. 9. 07:50

 

- 2019년 10월 10, 고려대학교 박물관, 융합 렉쳐 시리즈, 강연록

 

고려 청자와 정보 디스플레이 기기에서 보는 색채의 기술

- 정보 디스플레이 기기의 영상 구현과 예술 작품의 표현을 위하여

 

우정, 주병권


좋은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강연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고려청자와 디스플레이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심한 끝에 디스플레이가 색과 영상을 구현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우리 눈이 영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살펴본 뒤, 여기에 비색을 연결시키는 것이 나름 흥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포함한, 디스플레이에서 색과 영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저의 블로그에도 상세히 설명이 되어 있으니, 여유가 되시는 어느 좋은 날, 천천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jbkist, 디스플레이 공부, 특히, http://blog.daum.net/jbkist/3491, http://blog.daum.net/jbkist/4415)

 

 

 

 

 

 

구글 아츠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 앱을 이용하면, 세계의 문화 유산과 미술 작품들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온라인 겔러리이죠.  이를 통하여 우리는 세계의 유명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언제, 어디에서나 아주 편하게 감상할 수 있죠.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아직, 디스플레이가 작품의 원본과 일치하는 영상을 제공하기에 조금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카메라의 성능과 촬영 기법, 영상 신호를 처리하고 전송하는 통신 과정에서도 일부 불완전성이 있겠지만, 디스플레이가 영상을 완벽히 재현하기에 부족한 점도 분명 있습니다.  , 디스플레이 화면만으로 볼 때, 영상의 완전함은 표현할 수 있는 색의 품질, 그리고 형상의 섬세함에 의존합니다.  하나하나의 화소들이 더 정확하고 진실한 색을 표시하여야 하고, 화소의 크기는 가급적 작아, 더 부드럽고 매끈한 영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 중에 암스테르담의 운하라는 그림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표현하는 전자 기기의 종류와 디스플레이 화면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현이 되죠.  색감도 느낌도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섬세함도 떨어집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디스플레이 기기가 아직은 예술 작품들을 온전히 표시하기에는 2%가 부족하다는 점을 추측하게 됩니다.  잠시 일화를 말씀 드리자면, 저는 이 교회를 찾기 위해 암스테르담 운하들을 따라서 족히 반나절은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첨탑과 세모꼴 지붕, 그리고 창문의 꽃 문양으로 결국은 찾아내었어요.  다만, 모네가 이젤을 놓은 영역, 방향과 앵글은 대충 찾았지만, 운하의 방향도 틀어지고, 새로운 건물들도 많아 생겨서 정확한 포인트를 얻지는 못하였죠. (http://blog.daum.net/jbkist/2317)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디스플레이가 예술 작품을 완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화소가 만드는 색의 질과 함께 화소의 크기를 가능한 작게 함으로써 특히 경계부분이나 형상의 섬세함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청자의 비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더 신비롭고 오묘한 색이고, 모양 또한 오묘하리만치 곡선이 예쁘기 때문에 더 까다로운 색 표현 능력과 더 높은 섬세함이 요구되겠지요.

 

 

 

 

 

예술을 위한 디스플레이 주제로 넘어가면서, 색을 표현하는 빛에 관하여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아이작 뉴턴 경은 실내로 들어오는 빛을 프리즘을 사용, 색깔별로 분리합니다.  , 빛이 공기 속을 진행하여 오다가 굴절률이 다른 유리를 통과하면서 파랑쪽은 더 많이 꺾이고, 빨강쪽은 덜 꺾여서 무지개색을 만들어내죠.  한껏 내리던 비가 그친 어느 날 오후, 해가 비치면 대기 중에 남아있는 무수한 물방울들이 작은 프리즘 역할을 하면서 무지개를 만드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와 같이 태양빛은 서로 다른 색깔들이 모여서 하얀색으로 우리에게 도달하게 되며,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을 가시광선(visible light)이라고 하죠.  물론 태양빛에는 가시광선과 함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은 적외선과 자외선도 있습니다만.

 

 

 

 

 

 

 

이러한 가시광선들이 자연이나 물체의 표면에 닿아 반사하면서 우리 눈으로 향합니다.  물론 빛은 투과하기도 혹은 흡수되기도 하죠.  반사 과정을 거쳐 우리 눈에 도달한 빛은 홍체를 통하여 적당한 양으로 조절이 되고, 각막과 수정체를 통해 굴절, 초점이 맺혀져 눈 안쪽의 망막에 닿게 됩니다.    망막에는 빛의 밝기와 색(파장)을 감지하는 세포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이 세포들은 밝기와 색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주는 센서 역할을 하죠.  이로부터 얻어진 진기 신호, 즉 전류는 뇌로 전달되어 여기서 신호 및 영상 처리 과정을 거쳐 색과 모양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 때, 우리 눈 속의 색 감지 세포들은 세가지 색, 즉 빨강, 초록, 그리고 파랑을 특히 잘 감지하며, 이로부터 빛의 3원색이 정해집니다.  다른 색들은 이 세가지 색들의 조합으로 느끼게 되죠.

 

 

 

 

 

 

 

 

 

따라서, 디스플레이에서는 이러한 빛의 3원색을 작은 조각들마다 서로 다른 조합과 밝기로 표현하면서 영상을 보여줍니다. 마치 카드 섹션에서 서로 다른 색깔을 띄는 하나하나의 카드들이 모여서 문구나 무늬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죠.  화면을 구성하는 작은 조각들은 화면 위에 표시되는 그림(picture)의 단위(element), 즉 화소(畵素), 영어로는 picture element에서 줄여서 pi+cel, 발음이 좀 더 있어 보이게 pixel(픽셀)로 부르고 있죠.  회화의 기법 중 하나인 점묘법(pointillism)에서 작은 점들을 찍어가면서 세밀한 터치와 점들의 집합으로 그림을 그려가는 방식과도 비슷합니다.


화면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화소에서는 빛의 3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Red, Green, Blue, , RGB)이 만들어지고, 결국은 이 세 가지 색들을 조합하여 다른 색들을 만들게 됩니다.  이와 같이 RGB 각각을 만들어 내는 화소를 부화소(sub-pixel)라고 하죠.  결국, 디스플레이는 각 회소별로 빛의 3원색을 만들어 내고, 각 화소들이 서로 독립적인 색과 밝기를 표현하면서 영상을 표현하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5감에서 시각으로 얻어지는 정보가 70 ~ 80%를 차지한다고 하니, 현대 사회에서 디스플레이의 중요성은 실로 중요합니다. 

 

 

 

 

 

 

이제, 디스플레이의 색과 섬세함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겠습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한 화소들은 세 개의 부화소를 가지고 있고, 부화소들은 각각 빛의 3원색인 RGB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색들을 내는 화소들이 모여서 영상을 구성하죠.  여기 고흐의 얼굴 모습처럼.  화소들이 드러나는 고흐의 얼굴을 찾기 위하여 웹 서핑을 한참 하였습니다.  제가 참으로 사랑하는 화가, 고흐의 마지막 70여일의 장소, 오베르 쉬르 우아즈, 영화 러빙 빈센트의 무대이기도 하죠.  그 곳을 찾은 나의 걸음을 함께  따라가 보신다면 잔잔한 감동이 옵니다. (http://blog.daum.net/jbkist/2363, http://blog.daum.net/jbkist/2367, http://blog.daum.net/jbkist/2369, http://blog.daum.net/jbkist/2373, http://blog.daum.net/jbkist/2377)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그러면, RGB 세 개의 부화소들로 어떻게 화소의 다양한 색들이 만들어질까요?  부화소들에서 표시되는 RGB, 빛의 3원색들의 밝기를 나누어가면서 색들을 섞으면 가능해지죠.  , 흰색이 적당이 짙어지면(어두워지면) 회색이고, 많이 짙어지면 검은색이 되듯이, 다른 색들도, 짙은(어두운) 색에서부터 옅은(밝은) 색까지 나누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색의 짙음과 연함을 나누어 가는 것을 계조(gradation)이라고 하죠.  색을 나누기 위해서는 색을 만들기 위해 인가되는 에너지 값을 조절하여야 하는데, 액정 디스플레이(Liquid Crystal Display, LCD)에서는 전압값, 유기 발광 다이오드(Organic Light Emitting Diode)에서는 전류값을 조절합니다. 당연히 색을 잘게 나눌수록 색들의 조합도 늘어나니까 화소는 더 많은 색을 표현할 수 있겠죠.

 

 

 

 

 

 

 

색을 얼마나 잘게 나눌 수 있는가를 우리는 색 심도(color depth)로 표현합니다.  1비트(bit)의 데이터를 쓰면 0 혹은 1이므로 둘로 나눌 수 있고, 2비트의 경우에는 2의 제곱인 4 등등, 이렇게 하여서 10비트의 데이터로는 한 가지 색을 1024로 나눌 수 있으니, 3가지 색을 조합할 경우 만들어낼 수 있는 색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신이 주신 모든 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한 비트의 데이터를 써야 하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 결국 자연의 색을 완벽히 구현하기란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우리 눈이 그렇게 느끼도록 슬쩍 속여가면서 표현할 뿐이죠.  같은 이유로 그림의 색과 디스플레이의 색에서의 차이도 또한 존재합니다. 디스플레이의 색 범위를 넓혀서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가 즐겨 신는 밝은 하늘색 운동화를 표현할 수 있듯이, 고려 청자의 비색 또한 디스플레이 색 영역을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다음으로 표현의 섬세함을 살펴보죠.  섬세함을 디스플레이에서는 해상도로 표현합니다.  해상도는 화소의 크기와 직결되죠.  , 화소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화면 안에서 화소의 개수는 늘어나게 되고, 해상도는 높아집니다.  UHD(Ultra High Definition), 4K, 8K 등으로 표시되죠.  K라는 문자는 천(1,000)을 의미하니 4K 혹은 8K라 함은 화면의 긴 방향, 즉 가로 방향으로 각각 4천 개와 8천 개의 화소들이 배열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세로 방향 역시 비례하여 증가하므로 2K에서 4K, 그리고 8K로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화소들의 수는 2의 제곱, 4배씩 많아지게 되죠.  고려 청자의 유연한 선을 그대로 묘사하려면 역시 화소의 수는 무한개가 되어야 하고, 그리면 화소의 크기가 제로(0)이어야 하고, 그럴 경우 빛을 내는 영역이 없어지고.  결국 이 또한 불가능한 문제네요.  우리 눈의 다소 서투른 변별력에 의존할 수 밖에.

 

 

 

 

 

 

 

 

 

그래도, 디스플레이 기술은 진화합니다.  OLED에서 양자점(Quantum Dot, QD)을 적용하는 QLED(양자점 발광 다이오드)로 점점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많은 색, 더 섬세한 영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더 고급스럽게.  언젠가는 휘고 접고 말리면서 3차원 형상을 따라갈 수 있도록.  고흐의 별 헤는 밤도, 고려 청자의 비색도 온라인 겔러리를 통하여 원본 수준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온라인 겔러리의 재미있는 활용 일례를 하나 더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몇 해 전인가,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붓, 100년 전의 그 붓들을 재현하여 그 붓들로 포토 샵에서 사용자들이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어플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화가들의 그림에 덧칠이나 편집을 할 수 있고, 함께 그릴 수 있음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줄 것입니다. 지난 해 오슬로 근교의 뭉크 미술관 방문기를 함께 둘러 보시죠. (http://blog.daum.net/jbkist/3500)

 

 

 

 

 

 

 

 

 

디스플레이가 발전, 진화될수록 우리는 더 자극적이고 다양한 컨텐츠들을 맘껏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더하여 우리가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 아름다운 세계로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즐거움 또한 클 것입니다.  여기에 추억과 지난날들,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과 동경, 그리고 예술을 향한 영감과 교감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우리의 기억은 그 날들이 아닌, 그 순간에 있다라는 말처럼, 아름다웠던 순간을 영원으로 각인시키는 것,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서둘러 달려만 가기에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우니까요.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