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를 그리며/BK
한 여름
더위와 습기가 가득한 동경
세 평, 호텔 방에서 안네를 읽는다.
죽음을 피해 들어온 공간과
더위를 피해 들어온 공간이
어찌 같을 수 있으랴.
다만,
밖의 거칠음에 대한 도피와
한 때 점령국이었던 나라의 작은 공간이기에
과대망상, 그녀에게 나를 기대어 본다.
창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빛이 있고 없고의 차이.
풍경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내일이 있고 없고의 차이.
빛이 없어도, 내일이 없어도
글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마주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따뜻할 수 있으랴.
1943년 7월, 암스테르담 프란센흐라흐트 263번지를
2010년 7월, 동경 시나가와쿠 니시오이 6-1-1번지에
옮겨다 놓고
안네를 읽는다.
안네를 그리워한다. 안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