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의 상념/풍경의 사색

창가에서

BK(우정) 2022. 3. 4. 06:26

빛을 좋아한다

빛은 창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창을 좋아한다 

 

창, 창가의 글들

.

.

 

 

가을의 들창

 

가을 들창가에는

늘 붉은 낙엽이 쌓입니다

예쁘기도 처절하기도 한

이맘때면 내 마음도 붉습니다

봄과 녹음을 겪어 온 상흔

그리움과 쓸쓸함

그 상처를 안고

긴 동면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며

붉은 눈으로

붉은 낙엽을 바라봅니다

마음을 겪고 다쳐서

흐르는 선혈마냥

가을 들창가에는

늘 붉은 상흔이 쌓여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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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보며

 

공학관 2층 204호

처음 그 문을 열었을 때

창 밖 풍경이 다가왔습니다

정겨운 동료들은

4층과 5층에 모여 있지만

창 밖, 그 풍경에 멈칫

마음을 빼았겼고

15년째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창가에 서면

어설프게 높이 오르려던

젊은 날의 모래탑

세월에 굳은 중년의 석상

그리고 먼 훗날의

신기루가 보입니다

게오르그 장피르의 고독한 양치기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계절을 따라 흐릅니다

 

잊혀진 계절이 오면

창밖을 부는 바람도

봄의 목련, 겨울의 눈꽃도

떠도는 구름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겠지요

창가에 기댄 석상도

홀로 흐르는 강이 되어

먼 바다를 향하겠지요

 

그 날도 오늘처럼

창밖을 보렵니다

고독한 양치기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렵니다

봄 꽃으로 와서

겨울의 성숙함으로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을 그리워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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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날, 돌이킬수록 채색되는 날

 

그 날의 아득한 웃음은

창 가에 초콜릿 빛으로 머무는데

얼마나 더 아름다와야

그 날이 되어 웃을 수 있나

 

잊으려 할수록

빛은 커튼을 밀며 더욱 깊이 들어와

그 날의 정물

그 날의 모습에 색을 칠하고

 

창 밖, 아득한 그 날은

창 가 테이블로 세팅되어

그리운 정물로

그리운 모습으로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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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 바다를 보면

 

제주 오션스위츠 523호실

침상에서 반쯤 뜬 눈으로

창 너머 바다를 보면

멀리로 가는 배를 타는 듯하다

 

파도에 어울려

창도 커튼도 흔들리고

마음도 휘청

아득히 멀리로 떠나고 있다

 

이렇게 가면 언젠가는

시간의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바다 건너 시간의 나루에서

떠나간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창으로 오는 햇살

빛을 피하려 눈을 감으면

시간의 파도 소리는

꿈인듯 아련히 멀어져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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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창가

 

가볍게 눈이 내리는 날

카페에서 거리를 보며

눈처럼 가벼운 아메리카노

한 페이지 넘어가는 책장

 

목젖이 보이는 웃음도

눈시울이 젖는 울음도

눈송이로 날리는 추억

이렇게 흘러도 좋은 시간

 

너무 멀리 떠나지도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는

적당한 시야 적당한 거리

이렇게 흘러도 좋은 하루

 

그리움 속에 묻힌 슬픔

기쁨 속에 담긴 두려움

이별만큼 이어지는 재회

이렇게 흘러도 좋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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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기차, 창가

 

대전발 제천행 무궁화호

밤기차를 타면 밤으로 간다

멀리 보이는 불빛들을 지나

이름모를 간이역들을 지나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간다

 

불빛으로 아련한 그 날들

간이역으로 스친 인연들

멀고 가까운 사연과 이별이

지나온 시간의 레일아래

철로목으로 촘촘히 놓인다

 

언뜻 검은 창에 어리는 모습

마주보며 웃던 얼굴이여

홀로 피는 밤의 꽃잎인가

그 꽃잎 슬픈 바람으로 흘러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간다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강을 바라보며

 

오전, 갤러리와 전시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는

더 오래 머무른다

 

 

예술가의 흔적, 커피

그리고 밤의 창가, 글

 

창밖에서는, 창을 통하여 나오는 빛

겨울의 추위도 비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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