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일상의 상식

날개, 그리고 비행기

BK(우정) 2021. 5. 4. 12:02

다이달로스는 그리스 최고의 건축가이자 기술자였다. 그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미궁’을 설계했다. 하지만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힌다. 이카로스는 미궁을 탈출할 방법을 생각해낸다. 새처럼 높이 날 수 있다면 미궁의 구조를 알 수 있으니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카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미궁 위를 날아오른다.

 

날아올랐으나 추락하는 이카로스. 작품명 ‘The fall of Icarus’ ⓒ Merry-Joseph Blondel (1781-1853)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는 인간이 가지지 못한 욕망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하늘을 나는 꿈을 계속 갈망했다.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인간이 날 수 있기를 바라며 비행모형을 설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빈치의 비행 설계물과 도형을 보며 ‘악마의 도구’라며 손가락질했다.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꿈은 그만큼 허무맹랑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세계 최초로 유인 비행기를 개발한 라이트 형제

 

1903년 12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 드디어 인간이 동력을 이용한 비행 기계를 타고 날아오르는 데 성공한다. 3번의 시도 끝에 이뤄진 가장 긴 비행시간은 불과 59초 동안이었지만 ‘라이트 플라이어호’는 비행에 성공했다. 그동안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비행하는 글라이더나 열기구를 이용한 비행은 있었지만, 동력 기계에 사람이 직접 타고 비행을 한 것은 이때가 세계 최초였다. 인류의 숙원이던 꿈을 이룬 이들은 매우 유명한 ‘형제’다. 라이트 가문의 ‘윌버’와 ‘오빌’ 말이다.

 

오빌 라이트는 형 윌버가 45세에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비행기 개발에 열중한다. ⓒ 김은영/ ScienceTimes

 

어렸을 때부터 각종 장난감 등을 수리하며 만드는 것을 즐기던 윌버와 오빌은 신문 인쇄소 경영을 거쳐 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했다. 이들 형제는 평상시에도 기계를 만드는 것을 즐기면서 비행 모형 만드는 일에도 열중했다. 이들이 비행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독일의 항공 개발자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시 오토 릴리엔탈의 글라이더 비행은 세상을 흥분시키는 대사건이었다. 그는 1891년 처음으로 사람이 탈 수 있는 글라이더를 개발해 행글라이더 시대를 열었다. 오토 릴리엔탈의 글라이더를 통한 비행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동력이 없는 비행체였기에 오랜 시간 비행할 수도 없었고 기상 상황에 바로 대처하기도 쉽지 않았다. 오토 릴리엔탈도 돌풍을 만나 추락해 사망한다. 라이트 형제는 오토 릴리엔탈이 만든 글라이더에 큰 영향을 받고 안전장치와 가솔린 기관을 기체에 추가 장착한 비행기를 완성한다.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형제가 성공시킨 첫 비행기 ‘플라이어1호’의 모습. ⓒ https://photojournal.jpl.nasa.gov/jpegMod/PIA24434_modest.jpg

 

세계 최초로 무인동력기를 개발한 새뮤얼 랭글리

 

라이트 형제의 빛나는 성공 뒤에는 동시대에 비행기를 연구했던 새뮤얼 랭글리도 있었다. 그는 당시 가장 명성이 뛰어난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중 한 명이었다. 랭글리는 피츠버그대학의 물리학과 교수와 워싱턴 스미스소니언협회 회장이라는 명망 높은 직책을 가지고 미국 국방성의 든든한 지원 속에 비행기를 개발했다. 1896년 그가 세계 최초로 무인 동력기 개발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그가 인류가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해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903년 12월 8일 새뮤얼 랭글리가 만든 비행기 ‘애어로드롬(Aerodrome)’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강물로 추락했다. 9일 후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비행에 성공한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할 당시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새뮤얼 랭글리. ⓒ 위키미디어

 

비행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새뮤얼 랭글리는 비행기 개발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그는 비행기 연구를 위해 17년 동안 300명의 인력을 동원했다. 그동안 그에게 지원된 돈은 무려 7만 달러에 달했다. 라이트 형제도 805번의 실패 끝에 비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성공의 실패의 아버지’라는 격언이 이들에게만큼 잘 맞을 수는 없을 것이다. 라이트 형제는 랭글리 박사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자신들이 실패했던 요인들을 더욱 복기하고 연구했다. 새로운 비행 실험이 끝난 후에는 더 많은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던 감격스러운 순간, 아폴로 11호에는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호의 천조각과 나무조각이 실려 있었다. 지난 3월 미국 항공우주국(나사·NASA)이 화성으로 보낸 소형 헬리콥터 인지뉴이티(Ingenuity)에도 플라이어의 날개 겉면에 사용됐던 천 조각이 부착됐다. 인류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해 날아가려는 꿈을 계속해서 꿀 수 있었던 이유는 ‘악마의 도구’라고 불리던 비행기를 연구 개발했던 수많은 천재의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비행기를 연구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인류가 이카로스처럼 추락하지 않고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인류에게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아준 천재들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