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못 하는데 물리학자가 될 수 있을까? 오늘날 ‘전자기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형편없는 수학 실력을 가졌지만 영국의 전자기학과 전기화학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하며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노예로 태어나 납치를 당해 경마용 말 한 마리 값에 팔리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현재 미국의 바이오 기반 제품과 에너지를 생산한 선구자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 1864~1943)도 있다. 모두 신분과 차별, 멸시와 조롱을 이겨내고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선 천재들이다.
마이클 패러데이, 수학을 모르는 가난했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자기에 의해 전류가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다. 패러데이는 전자기력, 전자기 유도, 전기 분해 법칙 등 전자기학 연구에 평생을 투자했다. 그는 전자기 유도 법칙에 대한 실험을 거듭한 결과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최초의 발전기를 발명한다. 패러데이는 전자기학을 연구한 물리학자면서 화학자였다. 그는 화학과 전기를 결합시켜 전기분해 법칙을 만들고 양극(anode), 음극(cathode), 음이온(anion), 양이온(cation), 전극(electrode)과 같은 전문 용어들을 처음 학계에 도입하기도 한다. 영국왕립과학연구소는 패러데이의 연구 공로를 인정하며 초대 풀러 화학 석좌교수(Fullerian Professor of Chemistry)직을 제안한다. 이 교수직은 패러데이가 초대 교수직에 오른 1833년부터 현재까지 단 12명에게만 부여된 명예로운 직분이다.
패러데이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유년 시절에 학교를 자퇴하고 불과 13세에는 제본소에 취직해야 했다. 그가 수학을 잘하지 못했던 이유다. 패러데이는 영국의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의 조수가 되면서 어렵게 과학계에 들어왔지만 오랫동안 수학을 모르는 과학자로 주변의 냉대와 조롱 등 시련을 겪는다. 가장 큰 문제는 삼각함수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였기에 수학 공식으로 실험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수학이나 불우한 환경은 그의 과학적 열정과 천재적인 재능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패러데이는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을 하면서까지 수없이 실험을 반복하면서 결과를 증명해냈다.
조지 워싱턴 카버, 노예로 태어난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1941년 뉴욕타임스는 한 과학자의 얼굴을 표지 사진으로 실었다. 그는 바로 농화학자인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 1864~1943)였다. 조지 워싱턴 카버는 식물학, 화학, 세균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나타냈다. 이렇게 다방면에 재능이 많은 그를 두고 뉴욕타임즈는 카버 박사를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렀다.
그가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땅콩이었다. 카버는 당시 미국 남부지역에서 면화 재배로 인해 질소가 없어진 황폐한 땅을 재건할 방법으로 땅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카버는 황폐해진 땅에 사람들이 땅콩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땅콩이 대풍년이 들자 땅콩을 소비할 방법으로 땅콩 음식물과 땅콩 껍질로 만든 다양한 요리법과 실용품을 개발해 미국 남부 경제를 살리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조지 워싱턴 카버는 노예 가정에서 태어났다. 미국은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노예제도가 존재했다. 그가 태어난 1864년도는 남북전쟁 중으로 노예 상인들의 약탈과 납치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카버는 노예로 태어나 흑인으로 오랫동안 차별받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는 직접 글을 배우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지만 인종차별로 학교를 다닐 수도 없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에야 카버는 양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고등교육을 받게 되었고 과학자의 꿈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훗날 카버는 과학자로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에디슨 연구소의 제의를 거절하고 끝까지 동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마이클 패러데이와 조지 워싱턴 카버는 극복하기 어려운 신분과 인종차별, 과학의 공용어인 수학을 잘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섰다. 천재의 재능 못지않은 역경을 극복하는 노력과 과학을 향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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