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초음속여객기의 대명사로 여겨져 온 콩코드(Concorde)기는 1950년대부터 계획되어 1960년대에 시험기의 조립 및 시험비행 등을 진행하였다. 영국과 프랑스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초음속여객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기 때문에 이 계획을 ‘협조’를 의미하는 콩코드라 지칭하였고, 이는 나중에도 여객기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콩코드기는 일반 여객기와 달리 삼각형의 날개에 앞이 구부러진 뾰족한 모양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괴조’라고도 불렸고, 4발 제트여객기로서 최고 속도는 음속의 2배 이상인 마하 2를 돌파하였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운행이 추진되어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약 20기의 콩코드 여객기를 제작하였고, 성능과 안전성 등을 확인하고 1976년 1월에 세계 최초의 초음속기 상업운항을 개시하였다. 콩코드의 운항을 담당하는 항공사는 양국을 대표하는 영국 항공(British Airways)과 에어 프랑스(Air France)였다. 기존 여객기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력으로 8시간 정도 걸리던 뉴욕과 파리 사이를 3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었으므로, 시간에 쫓기는 사업가나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콩코드는 초음속여객기로서 일반 여객기보다 월등히 빠르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지만, 이에 못지않게 여러 단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결국은 콩코드가 시장에서 퇴장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가장 큰 단점은 매우 비싼 항공요금으로서 일반 여객기의 1등석보다 3배 이상의 고가였고, 일반석을 기준으로 하면 15배 정도가 비싼 셈이었다. 반면에 기체의 폭이 좁아서 다른 여객기의 일반석처럼 비좁은 좌석을 4열씩 배치하였기 때문에, 요금에 걸맞은 쾌적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콩코드 여객기는 비좁은 좌석에도 불구하고 최대로 가능한 좌석이 131석에 불과하였고, 운항회사들은 승객의 불편 등을 감안하여 좌석을 100석 정도로 유지하였다. 따라서 콩코드기는 처음부터 경제성에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였던 셈이다. 더구나 상업적 운항이 시작된 1970년대에는 전 세계적인 석유파동으로 인하여 유류비가 급격히 올랐던 터였다.
비행기가 초음속을 내기 위해서는 물론 연료를 엄청나게 많이 소모할 수밖에 없는데, 초음속여객기의 문제는 과다한 연료 소모와 비싼 요금 이외에 더 있었다.
여객기가 너무 많은 연료를 필요로 한다는 것 자체가 친환경적이지 못하겠지만, 콩코드기가 이착륙 시 생시키는 소음이 큰 환경문제로 대두되었다. 즉 초음속비행기는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 이른바 소닉 붐(Sonic boom)이라 불리는 큰 소음을 내게 되는데, 이 충격파는 원뿔형으로 확장되면서 강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지상에 갖가지 피해를 주게 된다. 빠른 속도와 아울러 콩코드기의 드문 장점이었던 안전성마저도 의심받게 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콩코드는 기존의 여러 문제에 더하여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상업운항을 시작한 이후 20여 년간 사소한 타이어 파손 사고 이외에는 단 한 건의 인명피해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으나, 2000년 7월 25일 에어 프랑스의 콩코드기가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이륙한 직후 갑작스러운 화재와 함께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100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전원 사망하였다. 사고의 발생은 앞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떨어져 나간 금속 조각 때문으로, 기체의 결함이나 조종사의 과실로 보기 어려운 불운이 겹친 결과로 판명됐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콩코드의 안전성 문제와 설계 결함 등이 지적되어 약 1년 여간 운항이 중단되었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기체를 개조하고 2001년 9월 콩코드의 운항을 재개하였지만, 승객은 예전보다 더 줄어들었고 결국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운항회사들은 2003년 운항 중단 방침을 확정하였다. 에어프랑스는 2003년 5월에, 영국항공은 2003년 10월에 마지막 승객들을 태운 고별비행을 한 이후, 콩코드 기체는 여러 나라의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되는 신세가 되었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고 말았는데, 그 원인으로는 경제성 및 환경문제, 그리고 2000년의 폭발사고 등이 꼽힌다. 그러나 사고 이외의 여러 문제들은 콩코드기가 탄생한 직후부터 지적되었던 것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27년간 동안이나 상업운항을 유지하였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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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처음으로 취항하였던 초음속여객기 콩코드(Concorde)는 27년간 운항해 오다가, 지난 2003년 10월 고별비행을 끝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콩코드기가 끝내 퇴장한 이유에 대해서는 과다한 연료 사용에 비해 탑승객은 적은 데에 따른 경제성의 문제, 소음 발생 등의 환경문제, 폭발사고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특히 모두 상당한 부유층이었을 승객들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2000년 7월의 에어프랑스 소속 콩코드기 폭발사고는, 운항 재개 이후 승객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고는 상업용 비행선의 퇴출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던 힌덴부르크(Hindenburg)호 폭발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체펠린(Ferdinand Adolf Zeppelin, 1838~1917) 백작이 본격적으로 여객용 비행선을 개발한 이후, 독일의 129번째 체펠린식 비행선이었던 ‘힌덴부르크(Hindenburg)호’는 대형 초호화비행선으로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37년 5월 미국의 한 공항에서 착륙 중에 큰 폭발사고를 일으켜 승객과 승무원, 지상요원 등 36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사고 당일의 악천후에 의한 뇌우, 또는 정전기 스파크 등에 의해 선체의 수소 기체에 불이 붙어 폭발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의 폭발 장면이 현장 신문기자들에 의해 촬영, 보도되면서 세계적으로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고 이후 독일에서 비행선의 제작과 이용이 금지되면서 여객용 비행선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공중 운송 교통수단의 자리는 ‘비행기’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그러나 힌덴부르크 폭발사고가 아니었더라도, 비행선이 계속 하늘의 왕좌 자리를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수소 기체로 인한 폭발, 즉 안전성이 가장 문제였다면,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안전한 헬륨 기체를 사용하면 해결되었을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여객용 비행선이 퇴출된 것은 결국 비행기와의 경쟁력이 근본적인 문제였던 셈이다. 비행기는 보다 작고 훨씬 빠르면서 더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등 여러 측면에서 비행선을 압도한다. 탑승 가능 승객의 수에 비해 덩치만 너무 큰 비행선은 유지 보수도 쉽지 않았다. 폭발사고가 비행선의 퇴장을 다소 앞당겼을지는 몰라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닌 셈이다. 1912년 4월에 발생한 초호화여객선 타이타닉(Titanic)호의 침몰사고 역시 150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사망하는 등의 큰 충격을 안겼지만, 크루즈 선 등 대형, 호화 여객선들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의 바다를 누비고 있다.
마찬가지로 콩코드기의 폭발사고 역시 콩코드기가 항공박물관에 전시되는 신세로 전락하는 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는 했겠지만, 그것이 가장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요인을 요즘 유행하는 단어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른바 ‘가성비(價性比, cost-effectiveness)’의 문제, 즉 지불하는 가격에 비해 효능과 만족도는 무척 낮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운항시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한 상황일지라도 일반석을 기준으로 기존 여객기 비해 상당히 비싼 항공 요금은 가성비를 별로 중시하지 않는 부유층 이외에는 선뜻 이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일등석보다 몇 배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비좁은 기체에 몸을 구겨 넣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지경이었다. 물론 가성비의 문제는 콩코드기가 퇴출될 무렵이 되어서야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고, 처음 취항했을 때부터 안고 있었던 문제였다. 그런데 취항 후 27년간이나 운항을 지속하고서 2003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콩코드기는 상업운항을 중단해야만 했을까?
언론인 출신으로서 유럽의 대표 미래학자이기도 한 독일의 마티아스 호르크스(Matthias Horx)는 이에 대해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온 그의 저서 ‘테크놀로지의 종말(원제 Technolution : Wie unsere Zukunft sich entwickelt)’에서 ‘노트북 컴퓨터의 출현’을 콩코드기 퇴장의 가장 큰 원인이라 언급하였다. 얼핏 전혀 관련이 없을듯한 생뚱맞은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나름의 합리성과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즉 ‘시간의 경제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다면, 콩코드기가 처음 등장한 1970년대에는 이로 인한 시간 절약의 효과가 매우 컸다. 일분일초가 아쉬울 정도로 바쁜 사업가나 부자의 입장에서는, 비행 소요시간을 반 이상 단축한다면 비싼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서라도 콩코드기를 탈만한 가치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트북 컴퓨터 등이 대중화되면서 비행기 안에서도 얼마든지 비즈니스 관련 일 등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시간 절약이라는 예전의 장점이 크게 퇴색되었다는 것. 아울러 초음속기가 아닌 기존의 여객기들이 대형화되면서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을 호화롭게 꾸미고 보다 쾌적한 여행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콩코드기와의 경쟁에서 더욱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노트북이 콩코드 시대를 끝내게 했다는 그의 주장이 맞는 것인지 정확히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콩코드기의 퇴장은 “발전된 과학기술을 적용하면 시장에서도 다 성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례로서, 오늘날에도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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