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전지가 그 시대의 과학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지 그리고 20세기 과학의 화려한 등장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 갈바니나 볼타는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볼타전지(1800)가 등장한지 꼭 20년이 지난 1820년 덴마크의 물리학자인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1777~1851)는 볼타전지로 실험하던 중 전지를 연결한 도선 주변에서 나침반이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나침반이 움직였다는 것은 뭔가 자석의 작용, 또는 자기효과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석이 없어도 도선에 전류가 흐르면 마치 자석이 있는 것처럼 자기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그때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외르스테드의 신기한 발견 소식은 순식간에 전기에 관심 있던 과학자들에게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과학자들이 발 빠르게 훌륭한 성과들을 쏟아냈다. 장 바티스트 비오(1774~1862)와 펠릭스 사바르(1791~1841)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변에 자기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정식화했다. (장(field)이라는 개념은 이로부터 얼마 뒤에 나온다.) 이를 비오-사바르 법칙이라고 한다. 비오-사바르 법칙은 전기와 자기를 연결하는 기본 법칙이기 때문에 전자기 현상에서 아주 중요하다. 비오-사바르 법칙은 고등학교 과정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도 대학 일반물리학 수업에서 처음 접했는데, 비오-사바르 법칙은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볼 수 없는 벡터 미적분의 언어로 기술돼 있어서 처음 봤을 때는 아주 당황스러웠다. 전자기학에는 이런 복잡한 적분계산이 많아서 미적분의 온갖 테크닉을 다 동원해야 한다. 비오-사바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역시 프랑스의 앙드레마리 앙페르(1775~1836)는 전류가 흐르는 두 도선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수학적으로 정리했다. 이를 앙페르의 법칙이라 한다. 전류가 흐르면 주변에 자기장이 생기니까 그 둘이 만나면 서로 힘을 작용하리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전류의 단위 암페어(A)는 앙페르의 공적을 기려 붙인 이름이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가 있었다. 패러데이는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하층민 출신이 어떻게 최고수준의 과학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경우로 내 생각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좋은 집안 출신에 능력까지 타고난 인재라면 어느 시대에서든 성공적인 인생을 살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패러데이는 가정 형편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13세부터 인쇄물 제본소에서 일하며 가게에 있는 과학책들을 읽고 주위 사람들과 토론했던 게 교육의 전부였다. 다행히 당시 가게 사장과 고객 등 주위 사람들이 패러데이의 열정과 능력을 알아본 덕분에 왕립학회에서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의 실험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패러데이는 염소와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등을 액화하는 데에 성공했고 벤젠을 발견하는 등 화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또한 왕립학회의 유명한 행사인 크리스마스 강연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래도 패러데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전기와 자기 분야에서 나왔다. 1821년 패러데이는 외르스테드의 실험결과를 연구하다가 전류가 흐르는 도선이 자석 주위를 빙빙 맴도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는 현대적인 전기모터의 원형이다. 당시에 패러데이보다 앞서 윌리엄 울러스턴과 험프리가 전기모터를 연구했었는데, 패러데이가 자신의 결과를 발표할 때 이들의 선행연구를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은 전기와 자기에서 멀어져 있다가 30년대에 다시 이 주제로 돌아왔다. 외르스테드의 실험결과를 잘 살펴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변에 자석의 효과, 즉 자기장이 생긴다면 거꾸로 자석의 효과로 전류를 흐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이렇게 현상을 뒤집어보는 역발상을 잘한다. 물론 역발상이 꼭 작동해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과학자들은 이런 식의 대칭적인 관계를 좋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는 모종의 아름다운 성질이 있어서 어지간하면 대칭성이 성립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신념을 갖고 있다. 패러데이는 고리 모양의 금속에 도선을 코일 모양으로 감아 실험했다. 코일 모양의 도선을 두 개 준비해 금속 고리 양쪽에 감고 코일 하나는 검류계(전류가 흐르는지를 측정하는 장치)에 연결하고 다른 하나는 전지에 연결했다. 놀랍게도 전지가 연결된 회로가 닫히자마자 반대편의 코일에 연결된 검류계가 움직였다. 이는 반대편 코일에 전류가 흘렀다는 말이다. 두 코일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므로 검류계가 연결된 코일에 전류를 유도한 원인은 전지가 연결된 코일일 수밖에 없다. 신기하게도 검류계는 전지회로가 닫히는 순간 또는 열리는 순간에만 움직였다. 회로가 닫힌 채 전류가 계속 흐르면 검류계 바늘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간다.
이 장치는 기본적으로 현대의 변압기와 같은 구조이다. 전지회로가 닫혀 한쪽 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그 주변에 자기장이 생기고, 이 자기장이 반대편 코일에 전류를 유도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외르스테드의 결과로부터 과학자들이 유추했던 결과가 확인된 셈이다. 패러데이는 아예 자석을 이용해 검류계와 연결된 코일 안쪽을 지나가게 했다. 역시나 검류계의 바늘이 움직였다. 여기서도 중요한 사실은 자석이 코일 안에서 가만히 정지해 있으면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석이 움직여야 전류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전자기 유도현상이다. 말이 좀 어렵지, 쉽게 말하자면 패러데이가 발전기를 만들었다. 20세기는 전기와 전자혁명의 세기였다. 지금 우리는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당시에는 전기 있는 세상이 무슨 의미인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었다. 일화에 따르면 한번은 영국 정부의 재무장관인 윌리엄 글래드스톤이 패러데이 연구실을 방문했다고 한다.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와 관련된 자신의 실험 결과를 보여 주었다. 장관이 이렇게 물었다. “이게 다 어디에 쓸모가 있습니까?” 정치인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 패러데이의 대답은 이랬다. “어디에 쓰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장관께서 여기에 세금을 매길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은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자들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패러데이의 일화는 과학자들이 ‘애정’하는, 이런 질문에 대한 일종의 고전적인 ‘모범답안’이다. 앞으로 20세기의 과학을 살펴보면 현대적인 모범답안도 몇몇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패러데이는 전기와 자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장(field)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장은 말하자면 공간의 성질이다. 자석이 있으면 주변의 공간이 자기적인 성질을 갖게 되는데 이를 자기장이 퍼져 있다고 표현한다. 패러데이는 자기장을 따라 힘의 선, 즉 역선이 존재해서 물체들을 서로 연결한다고 주장했다. 자기장이나 자기력선은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종이 위에 철가루를 뿌려 놓고 그 아래에 자석을 갖다 대면 철가루가 일정한 패턴으로 정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철가루가 자기력선을 따라 배열된 결과이다. 영화 《엑스맨》에 등장하는 매그니토는 말하자면 자기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돌연변이이다. 패러데이는 전기와 중력에 대해서도 전기력선과 중력선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현대적인 장론(field theory)의 모태가 되는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패러데이가 뛰어난 과학자이기는 했으나 자신의 결과를 수학으로 정리하지는 못했다. 이 작업을 완수한 사람이 바로 제임스 맥스웰이다. 맥스웰은 우연히도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현상을 발견한 1831년에 태어났으니까 어쨌든 패러데이와 인연이 있는 셈이다. 맥스웰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수학적 재능도 뛰어난 사람이라 여러 모로 패러데이와 정반대였다.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역선 개념에 큰 관심을 가져 1856년 《패러데이의 역선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여기서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역선을 물리적인 실체라기보다 기하학적인 유추로만 해석했었다. 이후 1861년에 출판한 《물리적 역선에 관하여》에서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켰다.
56년의 논문과 비교해 보면 제목의 차이가 흥미롭게 눈에 들어온다. 56년 논문의 역선은 ‘패러데이의 역선(Faraday's lines of force)’인 반면 61년의 역선은 '물리적 역선(Physical lines of force)‘이다. ’패러데이의 역선‘은 굳이 말하자면 패러데이만의 ’뇌피셜적인‘ 개념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반면 ’물리적 역선‘은 보다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역선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후자의 연구에서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의 소용돌이 개념을 적용했다. 소용돌이는 물이나 공기 같은 유체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이미 윌리엄 톰슨이 패러데이의 연구결과를 보고 비슷한 유추를 한 적이 있어 맥스웰은 톰슨과 편지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현상이 소용돌이를 매개물로 해서 일어난다고 보았고 이로부터 이 매개물의 진행속도가 당시 관측한 광속의 값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61년 논문에서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 현상을 아우르는 20개의 방정식을 제시한다. 이를 맥스웰 방정식이라고 하는데, 벡터연산을 이용해 현대적인 형태인 4개의 방정식으로 정리한 것은 1884년 올리버 헤비사이드 등이다.
맥스웰 방정식은 전기 현상과 자기 현상을 하나의 ‘전자기 현상’으로 통합해 고전 전자기학을 완성한 방정식이다. 여기에는 쿨롱의 법칙,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현상, 맥스웰이 업데이트한 앙페르의 법칙 등이 포함돼 있다. 지금도 맥스웰 방정식은 전자기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방정식이다. 맥스웰 방정식을 조합하면 전기장과 자기장에 대한 똑같은 파동방정식을 얻을 수 있다. 파동방정식은 그 파동이 진행하는 속도를 방정식 자체에 품고 있다. 그 값은 역시나 광속과 똑같다. 맥스웰은 당연하게도 빛이란 전자기 파동이라고 결론지었다. 빛의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파동이다. 이 둘은 서로 수직인 상태로 서로가 서로를 유도해 가며 각자의 파동을 이루면서 같은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것이 전자기파이다. 그 중에서 특별한 파장대의 전자기파가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가시광선으로서의 빛이다. 가시광선은 단일한 파장의 전자기파가 아니라 다양한 파장의 전자기파의 집합체이다. 붉은색의 파장이 길고 푸른색, 보라색이 짧다. 보라색 바깥의 더 짧은 파장대의 전자기파를 자외선이라 하고 붉은색 바깥의 더 긴 파장대의 빛을 적외선이라 한다. 자외선보다 파장이 더 짧아질수록 엑스선, 감마선이 된다. 한편 적외선보다 파장이 더 긴 전자기파가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등이다.
맥스웰은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임을 간파하고 가시광선과는 다른 파장대의 전자기파,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가 존재한다고 예측했다.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한 사람은 바다 건너 독일의 하인리히 헤르츠(1857~1894)였다. 헤르츠는 1888년 전기 스파크 실험으로 파장이 짧은 라디오파를 만들어내고 이를 검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1895년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1874~1937)가 헤르츠의 실험결과를 더욱 발전시켜 최초의 무선통신에 성공했다. 스마트폰 없이는 한시라도 살기 힘든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무선통신의 중요성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맥스웰 방정식의 등장으로 고전 전자기학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빛이 전자기 파동이라면 파동의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바다에서 일렁이는 파도는 물분자가 매개체이고 소리는 공기분자가 매개체이다. 그렇다면 빛의 매개체는 무엇인가? 즉, 빛은 무엇의 진동인가? 사람들은 그 매체를 에테르(aether)라고 불렀다. 에테르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 천상계와 지상계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지상계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가 지배하는 반면 천상계에는 제5원소에 해당하는 에테르가 가득 차 있었다. 한참 뒤인 17세기 빛이 파동이라고 주장했던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1629~1695)는 빛이 에테르의 진동을 통해 전파된다고 생각했다. 이후 빛의 파동설이 승승장구할 때마다 파동의 매개체로서 에테르는 계속 소환될 수밖에 없었다. 빛이 전자기파임이 밝혀진 19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빛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그 매개체로서의 에테르의 성질이 더욱 기묘해졌다. 일단 전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하고 굉장히 단단해서 진동수가 아주 큰(또는 파장이 아주 짧은) 빛을 전파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행성의 운동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눈에 보이지도 않아야 한다. 당연히 과학자들은 이 기묘한 물질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애썼다. 맥스웰 자신이 에테르를 검출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1878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에테르 항목을 작성했는데 거기에 에테르의 성질, 역할 등을 기술하며 실험적으로 검출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했다. 지구가 우주에 퍼져 있는 에테르 속을 날아다니니까 지구 표면에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에테르 바람이 한쪽으로 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에테르가 부는 방향과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빛의 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당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비슷한 아이디어로 실험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실험을 한 사람이 미국의 앨버트 마이컬슨(1852~1931)이었다.
마이컬슨은 1881년에 단독으로, 그리고 1887년에는 에드워드 몰리와 함께 실험을 했다. 역사적으로 마이컬슨-몰리 실험으로 알려진 이 실험은 한 광원에서 나온 빛을 수평방향과 수직방향으로 나누어 각각 똑같은 거리를 이동하게 한 뒤에 다시 한 곳으로 모아 그 결과를 관측하는 실험이다. 만약 에테르 바람이 없다면 수평방향과 수직방향으로 움직이는 빛의 속도도 똑같을 것이고 따라서 관측자의 눈에는 똑같은 위상을 가진 두 빛이 모여서 만드는 간섭무늬를 보게 될 것이다. 이 무늬는 한가운데가 밝고 양쪽 옆으로 갈수록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줄무늬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전체적으로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일 것이다. 만약 에테르 바람이 분다면 일반적으로 수직방향으로 움직이는 빛과 수평방향으로 움직이는 빛의 속도에 다른 영향(정확하게 45도 방향으로 불지 않는다면)을 미칠 것이다. 그 결과 관측자의 눈에 도달할 때에는 수평방향을 이동한 빛과 수직방향을 이동한 빛의 위상이 약간 달라져서 간섭무늬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런 관측 장비를 마이컬슨의 이름을 따서 마이컬슨 간섭계라 부른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높은 정밀도의 실험장비였다.
마이컬슨과 몰리는 아주 높은 정밀도로 간섭무늬의 변화가 없음을 관측했다. 이들은 기구 전체를 돌려보기도 하고 계절에 따른 변화(지구의 운동방향이 바뀔 테니까)도 고려하는 등 여러 가지 옵션으로 실험을 반복했으나 그 어떤 경우에도 간섭무늬의 변화를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에테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한 번의 실험으로 어떤 과학 이론이나 패러다임 전체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경우는 드물다. 에테르도 마찬가지였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여전히 에테르를 폐기하지 않았다. 똑똑한 과학자들은 에테르를 폐기하지 않고도 마이컬슨-몰리 실험이나 여타의 전자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혁명은 항상 구체제, 즉 앙시앵 레짐을 뒤집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혁명의 주역은 공교롭게도 맥스웰이 사망했던 1897년에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독일의 울름이었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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