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명화`에서 만난 수많은 명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닥터 지바고`다. 끝없는 설원을 달려가던 기차, 그 위에서 펼쳐지는 운명적 사랑, 그리고 역사의 비정함. 이런 것들이 필자에겐 화인(火印)처럼 남아 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작품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최초로 거부한 사람이 파스테르나크였다. 파스테르나크는 개인의 소신이 아닌 구소련 정부의 압력 때문에 상을 거부해야 했다. 1955년 탈고된 `닥터 지바고`는 소련 당국으로부터 혁명 이데올로기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출판 허가를 받지 못했다. 소설이 처음 출간된 곳은 이탈리아였고, 작품성에 탄복한 한림원은 1958년 그해 노벨상 수상자로 파스테르나크를 선정한다. 수상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였다. 흐루쇼프는 파스테르나크에게 추방하겠다는 협박을 했고, 심약했던 파스테르나크는 수상을 포기했다.
혁명과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희생되는 인간을 그린 소설 `닥터 지바고`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주소서. 나는 당신의 완고한 뜻을 사랑하여 이 배역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연극이 시작되오니, 이번만은 배역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주인공 지바고는 `햄릿`에 나오는 대목을 독백처럼 읊조린다. 얼마나 운명을 피하고 싶었을까. 파스테르나크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
1890년 모스크바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모스크바대학과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1914년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를 내며 시인으로 데뷔한다. 파스테르나크는 기질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예술 외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러시아혁명, 스탈린 독재, 1·2차 세계대전, 동서냉전 등 굵직한 역사가 그의 인생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는 평생 자신에게 주어진 비운의 배역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소설 속 지바고처럼 도망치지 못했다. `닥터 지바고` 이후 단 한 편의 장편도 쓰지 못한 채 모스크바 교외 작가촌에서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1960년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시인으로 먼저 데뷔를 해서일까. 소설 `닥터 지바고`에는 시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지바고가 파란만장한 여인 라라에게 했던 말이다. "당신이 슬픔이나 회한 같은 걸 하나도 지니지 않은 여자였다면, 당신을 이토록 사랑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발을 헛디뎌 보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파스테르나크의 슬픔이나 회한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그를 사랑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 출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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