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카프카, 변신

BK(우정) 2020. 3. 1. 09:52

모든 첫 문장은 글의 뿌리이자 시작점이다. 나머지 문장은 첫 문장에 머리채가 잡힌 채 ‘매달리어’ 간다. 첫 문장에 글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할까. 부실한 첫 문장은 나머지 문장들을 꼬치처럼 꿰지 못하고, 흩어지게 둔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변신’은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집안을 총 책임지던 가장이 어느 날 커다란 벌레로 변신한다면. 당신이 그의 가족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이 소설은 읽는 데 두 가지 재미 요소가 있다. 하나는 그레고르 잠자가 완전히 ‘벌레화(化)’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다른 하나는 그레고르 잠자 못지않게 변신하는 가족들의 심리와 행동을 따라가며 읽는 것이다. 가족들은 사랑과 걱정의 마음을 내비치다, 벌레가 된 그의 모습을 마주하고는 경악한다. 공포와 한숨,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이후 실망과 원망, 짜증, 분노를 거쳐 가족들은 드디어 ‘살의’를 느낀다.


“저는 저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오직 한 가지,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동안 저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늙은 부모와 무력한 여동생 대신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벌레’로 살아온 그레고르 잠자. 그가 쓸모 없는 벌레로 변하자 가족들은 싸늘한 태도를 보이고, 현실적이 된다. 밖에 나가 일을 구하고, 하숙을 치고, 삯바느질을 하며 살 궁리를 한다. 나약했던 여동생은 “괴물”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선동하는, 가족의 새 리더로 변모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 안에서 왜 ‘괴물’로 전락했을까. 표면적으로는 그가 자신들과 다른 형질을 띠는 거북한 종(種)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자신과 다른 것을 두려워한다. 때로 견디지 못하고, 공격한다. 파시즘, 민족주의, 가족 이기주의, 주류집단의 결속, 소수자에 대한 혐오세력 등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그레고르 잠자가 갑충이 아니라 병아리나 고양이로 변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 모른다. 한편 이야기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레고르 잠자는 하루아침에 무력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괴물과 다름없어졌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해오던 역할과 임무, 희생, 성과, 기대치에서 벗어난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자 처치 대상이 된 것이다. 가족들의 혐오가 그레고르 잠자의 외형과 존재의 형식(역할)에 기인한다는 점이 입맛을 쓰게 한다.


카프카는 인간의 본성, 이기적인 습성과 배타적 태도, 불안과 공포, 부조리로 점철된 삶을 면밀하게 관찰한 작가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대체로 부조리한 상황에 빠져 옴짝달싹 못한다. 기이한 상황 설정은 동화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내용을 풀어가는 화자의 시선과 작가의 언술이 치밀하고 논리적이기에 ‘사실성’을 획득한다. 그가 보여주는 불합리한 무대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주어진 ‘상황(시스템)’, 개인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견고한 벽, 보이지 않는 억압과 지배다. 그것은 10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카프카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고립되는지, 우스워지고 몰락하는지 집요하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짧은 소설을 앞에 두고 질문해 본다. 가족을 탄생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가족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은 사랑해서 필요한 것인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인가. 우리는 결국 무엇으로 ‘변신’할 것인가.


이상, 출처;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1211570028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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